건축의 역사 - 중력에 저항하다. III
안녕하세요 T모사에 이제 더이상 없을수도 있는 배경아티스트/TA Silverchime입니다
저번에 서양건축사의 아버지뻘 되는 그리스의 건축에 대해 알아 보았지요?
오늘은 에트루리아-고대로마-로마건축 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BC 900년경 가장 문명화된 곳은 어디였을까요? (다른 문화의 타임라인을 언급하지 않기로 했지만...)
놀랍게도 북아프리카와 아시아였습니다.
기이한 크레타/미노아 문명을 제외하면 말입니다
<크레타 섬에 존재하던 미노아 문명>
(BC 3500-1500년 경에 이미 수세식 변기와 환기시설 , 수도시설, 하수 시스템,
심지어 비행 머신까지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문명입니다. 본격 외계인 개입설.)
미노아 주거의 천정Lightwell 위쪽이 뚫려 있어 빛이 아래층까지 들어옵니다.
저 벽화도 복원한 겁니다. 원래 아티스트들이셨슴...
기원전 3-2천년 정도에 석재로 이삼층 집을 짓고 이러고 살았다니 -_-a 놀랍지 않습니까
그레이트 마징가의 적도 궂이 말하자면
미케네가 아니라 미노아Minoan 또는 크레타Creta 문명이라 함이 좀더 납득이 갈 것입니다.
이런 당시 상상할 수 없었던 수준의 문명이 화산 폭발로 하루아침에 멸망한것도 미스테리이지요
이런 대재앙을 보고나서 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없었을 겁니다.
폐허가 된 뒤 미케네의 빈집털기...미케네-그리스(에인션트 그리스) 로 이어지는 형태지요.
그러나... 위에 건축에서 보면 약간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이제 그 뭔가(?)아쉬운 부분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에트루리안 문명 Etruscan civilization (B.C. 768 - )
유럽은 상대적으로 많이 뒤떨어져 있었지요. 그러나 이탈리아 서쪽 해안을 따라 정착한 에트루리아인들이 이 문명의 흐름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이 사람들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여러 설이 있지만, 토착민들이 그리스 쪽에서 지식을 들여와서 발전했다 라는 설이 지배적입니다. 그릭 알파벳을 썼지만, 말은 자기들 특유의 언어를 구사하였습니다. 적어도 손재주와 장사, 그리고 머리가 좋았던 것은 확실합니다.
어째서 에트루리아를 언급하느냐고 하면, 이 에트루리아 인들이 이탈리아 중부(로마의 중앙북부 토스카나 지방, 사실상 Tuscany는 Etruscan에서 기원된 단어 입니다. ) 에서 가장 일찍 도시국가를 세우고 문화를 발전시켜 나아간 문명이기 때문입니다. 이탈리아 반도에서 가장 일찍 건축문화를 꽃피운 문명이기도 합니다.
(그리스의 에게 해 문명과는 약간 서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역사의 포커스가 서지중해로 이동합니다.
에트루리아 역시 BC 700-800년 정도에 적극적인 식민/영토확장을 시도했고,
결국 기존의 세력 그리스-페니키아인들과 충돌을 면할 수 없었습니다.
피할수 없는 충돌의 결과로 알랄리아 해전Naval Battle of Alalia 에서
에트루리아+카르타고 연합함대가 그리스 함대를 격퇴한 후
에게해에서 서지중해로 역사의 저울이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이탈리아 서쪽의 두 섬 중 코르시카는 에트루리안 손에, 사르데냐는 카르타고의 손에 들어갑니다.
에트루리아 인은 상업도시로서 개방적인 문명을 이루었으며,
또한 에게해 문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도 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신전 건축등이 영향을 많이 받았지요.
또한 멋진 건축적 공헌은 , 바로 혁명적인 배럴 볼트와 아치를 사용함에 있었습니다.
건물에 가장 쉽게 개구부(開口部)를 내는 방법은 바로 다음과 같은 형태입니다.
상인방Lintel으로 상부의 무너지는 것을 방지하고 아래로 통로나 창을 내는 것이 가장 기본이지요.
그러나 이 방법은 위에 큰 무게(하중)이 실릴 경우, 쉽게 부러지기 때문에 큰 너비의 통로를 내기가 쉽지 않다는 약점을 가집니다.
그러나 아치의 발명으로 인해 비교적 작은 돌들로 반원형태의 아크를 만들기 시작한 후,
이 혁신적인 공법은 훨씬 더 넓고 높은 개구부를 가능하게 하였고, 심지어, 더 큰 하중을 받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주 작고 형태성의 아치는 수메르인도, 그리스인도, 마야인도 변칙적인 아치의 형태를 만들어 냈습니다만,
에트루리안들이야말로 수직방향의 무게를 측벽으로 분산하는 제대로 된 아치구조의 컨셉트를 정착시킨 장본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측 : <The 'Cloaca Maxima' BC 600>
그들은 아치를 연속해서 나열할 경우 천정이 동그란 형태의 복도를 만들 수 있다는것을 생각해 냈고,
위와 같은 때의 로마 최초의 볼트를 이요한 하수 시스템을 에트루리안들이 디자인 하였습니다.
이 유용성은 그야말로 혁명과 같아서, 아치는 모든 류의 거리와, 빌딩 등에 급속히 보급되기 시작하였습니다.
로마 문명 ( 전설에 따르면 : BC 753~ )
로마의 시조라고 전해지는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동상.
저때만해도 사이가 그리 좋았었는데...
에트루리아 남쪽에 척박한 땅의 작은 도시국가 로마가 이렇게 커질줄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로마는 문화적으로 에트루리안들에게 어마어마한 영향을 받았으며,
BC509년까지 에트루리아 왕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폭정 왕정을 벗어나, 드디어 로마 공화정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으아아아 공화정 출범이요
그 작던 에트루리아 남쪽 척박한 위치에 있던 작은 도시국가 로마가
다음과 같은 방대한 제국령을 차지하게 됩니다.
아래로는 이집트부터, 위쪽으로는 브리튼까지.
이때는 대서양 동쪽으로는 지옥이 있다고 생각했고,
사실상 인지하던 유럽 세계를 거의 정복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각지에서 몰려드는 재화와 정복지의 노예들로 로마는 이례없는 영광과 사치의 시대를 누리게 되고
그 재력과 노동력을 기반으로 건축의 대 혁명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로마에 대한 역사를 나열하면 한도끝도 없으므로, 몇가지 키가 되는 문명과 기술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재료적 측면 : 콘크리트의 발견
콘크리트로 만든 로마시대 볼트.
이태리 포졸리pozzoli라는 마을에 이것이 그리 많았다고 하네요. 화산회Pozzolana
로마시대에 사용된 콘크리트는 생석회quicklime와 화산회pozzolana에 물을 추가하고 골재를 섞어 만든 수경콘크리트를 사용하였습니다.
가히 건축 재료의 혁명이라 할 수 있었지요. 아치를 360도 회전시켜 만든 돔도 이것으로 만들어 졌습니다.
이 콘크리트를 보강재 또는 접착제로 사용할 수 있었던 배경이 있지 않았다면 수많은 건축물의 구현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볼트와 교차 볼트
볼트를 서로 교차시키면 교차볼트Groin Vault/Cross Vault가 됩니다.
그리스의 신전은 여기서 평면의 약간의 진화를 통해 바실리카 Basilica로 변하는데
이 내부 천정부분이 바로 이 볼트와 크로스볼트로 구성되게 됩니다.
성 베드로 바실리카 Saint Peter Basilica.
천정부가 볼트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크로스볼트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바실리카 측랑(측면 복도)
아치와 돔
다음으로 아치를 중심선에서 180도 회전하면 돔을 만들 수 있습니다.
가장 유명한 로마시대의 돔 건물은 판테온이겠지요.
실제로 가서 봐야 되는데 말이죠.
가운데 있는 구멍은 와류로 인해 비가 내리는 날씨에서도 비가 들이치지 않는다고 합니다.
현존 철근 등으로 보강되지 않은(Unreinforced)
순수 콘크리트로 세계 최고 규모의 돔입니다.
바실리카 Basilica
바실리카는 고대 로마에서부터 시장market(실내)과 법정court을 겸한 공공건물로서 존재하였습니다.
커다란 실내 공간이 필요했던 당시의 요구에 부응하여, 이전 단계의 가장 커다란 실내공간이었던
신전건축에서 아이디어를 얻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이 내부의 공간배열은 대대로 이어져 성당 건축의 모태가 됩니다.
신이 아닌 인간이 내부 공간을 잠시 차지하게 됩니다. (포럼, 마켓, 기관 등)
곧 다시 성당건축으로 신에게 돌아가지만 말입니다.
물론 처음부터 이랬던건 아니었고,
초기 바실리카는 다음과 같은 형태였습니다.
천정이 볼트가 아닌 목조 가구식 지붕으로 되어 있는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부에서 보면 이런 형태입니다.
로마 후기-로마네스크로 가면서 이제 저 부분이 볼트로 바뀌게 됩니다.
수로시설 Aqueduct
로마가 도시문명을 한세대 더 높이 끌어올릴 수 있었던 것 중 하나입니다.
도시기능중에 가장 핵심인게 뭘까요? 상하수도, 전기, 인터넷(퍽)
네 다시 말해서 인프라입니다. 대부분의 로봇들이 해야 할 일은
현존 개발된 어느 안드로이드보다도 훨씬 더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정복지에서 잡아온 노예들이 있었으니
당시의 로마 사람들을 불편하게 살았다고 여기시면 안됩니다.
당시에 이런 복장이 개발되지 않았다는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물론 저는 노예제를 반대합니다!)
각설하고, 로마는 아치를 이용하여 할로우텍(?) 공법으로 (그걸 다 석벽으로 쌓았다고 하면 끔찍하겠죠)
긴 수로를 도시안으로 끌어들였습니다.
정수시설과 펌프를 빼면 사실상 현대와 똑같습니다.
에너지 친화적이라는 면에서는 좀더 나을수도 있겠네요.
(그러나 미노아 문명에서는 이걸 이미 BC 2000년도에 이룩해 냈습니다 -_-
4천년전이라고요 로마 3등! 2등은 바빌로니아 공중정원.)
그 규모는 심히 창대하여, 모든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도 지만
모든 도회에 이 수로Aqueduct도 뻗어 있었지요.
하수도는 위의 에트루리안 하수도를 봅시다. 에트루리안 기술자들은 로마에 기술을 전파했으며
최초의 로마 하수도 디자인도 이 사람들이 하였습니다.
규모도 커서 안으로 사람들이 다닐 수 있었지요. 사람들이 숨어다니기도 하고
나중에 지하무덤 Crypt와 함께 던전Dungeon의 모티브가 되기도 합니다.
목욕탕 Roman Bath
자 수도시설도 있겠다 도시위생을 위해 발전된 시설이 목욕탕입니다
기본적인 구조는 바실리카와 같습니다만, 위에 뚜껑을 덮을 필요가 없었으므로
(가운데 큰 공간을 신랑 Nave라고 합니다) 신랑 공간이 더 넓을 수 있었지요.
Roman Bath
고대 로마의 목욕문화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러고 보면 최고의 서비스 기계는 바로 사람의 손 이네요.
개선문 Triumphal arch
아치와 볼트의 응용형이라 볼 수 있습니다.
콜롯세움 Colosseum
대단해 보이지만 외벽은 결국 수로Aqueduct를 원형으로 돌린 것입니다.
(이렇게 간단하게 넘어가도 되는건가...자네)
그외에도 여러 로마시대의 혁신적인 건축물이 많지만,
건물 하나당 사실 다 컬럼 하나는 나올거에요 ^^; 헉헉헉 여기서 대강마무리 짓겠습니다.
(이 글은 아무래도 공학적 글이니까요..)
결론
에트루리아-로마로 이루어지는 로마 시대의 건축문화는
에트루리안- 아치의 기본컨셉인
수직하중을 홍예석 voussoir을 통해 다른 쪽으로 분산한다-는
진정한 아치의 개념을 확립하였으며
로마에서는 콘크리트라는 재료의 발견과, 풍부한 자금과 노동력을 베이스로 하고
아치를 응용한 기술로서 볼트Vault, 그리고 교차 볼트Cross Vault/Groin Vault를 사용함으로서
현대 유럽 건축의 기본이 되는 구조체를 발전시키며 거대하고 아름다운 건축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집트-그리스에서 이어진 신전의 계보는 바실리카를 중간 매개체로 하여 중세 고딕 성당건축의
기본적인 평면과 수직으로 높고 수평으로 넓은 공간에 대한 도전의 가능성을 열게 됩니다.
천정의 높이도 높아졌을 뿐더러, 내장공간의 스팬도 넓어지고,
들어올려진 천정의 사이간격에 창문을 냄으로서 실내공간에 빛을 끌어들이게 되었습니다.
(이는 차후 스태인드 글라스로 이어집니다)
자, 한번 생각해 볼게 있어요
로마나 에트루리아 이전의 문명을 게임배경으로 할때
아치나 볼트와 같은 구조체를 배치한다던가, 바실리카와 같은 거대한 건물을 넣으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요?
다른건 몰라도 그런게임을 유럽쪽에 퍼블리싱 할려면 문제가 생기겠지요.
이런 배경을 하려면, 어떠한 마법이나, 판타지 종족과 같은 일종의 기믹등이 없다면
아마 그 게임 내의 문명이나 환경에 대하여 설득력을 가지기 힘들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음은 고딕 건축.
신성하고 높은 공간에 대한 동경,
중력에 맞서 불가능을 현실로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즘 이런저런 개인적인 일이 많아 업데이트가 좀 늦었습니다.
다른 모든 분들께는 저에게와 같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기원하겠습니다.
그래도 웃음과 여유를~! ^^
즐거운 목요일 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