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으로 타당하거나 뚜렷한 근거는 없지만 그동안 경험상 느껴왔던 생각들을 좀 풀어보겠습니다. 너무 당연한 말을 하는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지만 개발 초년생들에게는 적당히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참고로 여기에서 '아티스트'의 범위는 컨셉 일러스트레이터, 3D 모델러, 3D/2D 애니메이터 등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입니다.
말하려는 주제는 두 가지인데요,
1. 작업 전 - 머리 속에서 구체화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2. 작업 할 때 - 숲을 먼저 보고 나무를 보자
당연한가요? ^^
먼저 '머리 속에서 구체화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에 대해 얘기 해보겠습니다.
작업자 머리 속에서 완성된 모습이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은 상태로 비주얼 작업을 하는 개발자를 가끔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사람은 아티스트라는 단어를 붙이기도 민망한데요. 그래픽 툴의 화려한 필터나 플러그인들을 주로 사용해서 사람들의 눈을 현혹시키는 결과물을 곧잘 만들어내긴 하지만 그게 다입니다. 툴이나 플러그인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무엇이 우선이고 더 중요한지를, 세계를 놀래킬만한 창작의 레벨을 말하는겁니다. 요즘은 전반적인 수준이 상향 평준화 되어서 찾기 힘든 레어(Rare) 클래스입니다.
사전 이미지화는 비주얼 그래픽 파이프라인의 최초를 담당하는 컨셉 아티스트에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닙니다. 컨셉 원화나 개발 원화가 아무리 충실하게 만들어져있더라도 3D 입체로 만들어지려면 생각보다 많은 부분을 상상하고 창조해야합니다. 애니메이터 역시 상상하고 창조해야 하는게 정말 많습니다. 이펙트도 마찬가지구요.
아주 오래 전 손 그림(연필이나 붓 등)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타블랫(포토샵 등)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논쟁이 있었습니다. 요즘도 어디선가 있을법한 논쟁인데요. 천리안 하이텔 뭐 이런 시절의 얘기입니다. 정말 옛날이죠. 당시 결론이 어떻게 났는지 잘 모르지만 지금 생각으로는, 손도 타블랫도 도구라서 자신의 머릿 속 이미지를 가장 빠르고 편하게 전달할 수 있는 도구를 쓰는게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도구는 무엇을 쓰던지 상관 없고 사실 중요한건 그 사람의 머릿 속 이미지라는거죠.
그런데 여기에 말하고싶은 것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창의적으로 이미지화를 해야한다는 건데요. 이미지화는 익숙한 소재에서 좀더 쉽게 가능하겠지만 익숙하다고 해서 쉽게 넘겨서는 안됩니다. 예를 들어 마법사가 강력한 마법을 쓰기 위해서 공중에 살짝 뜬채 옷이 펄럭거리고 주변의 기운이 회오리치며 몰려들고 등과 목을 뒤로 꺾으며 캐스팅을 하는 설정은 너무 뻔하죠. 이런건 너무 뻔해서 사전 이미지화가 너무 쉽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예를 들어 실생활에서 서로 다른 사람 열명이 동일한 속도로 나란히 걸어가는 상황을 가정해보면 체중이나 성격 등 수많은 변수에 의해서 모든 걸음걸이가 다 개성이 있습니다. 만약에 셜록 홈즈가 열명의 걷는 모습을 주의깊게 관찰한다면 아마도 30초만에 그 사람들의 서로 다른 성장 환경이나 성격, 어쩌면 질병 까지도 유추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사소한 장신구에서부터 미묘한 시선의 변화 등 수 많은 단서들이 가득할테니까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게임 컨텐츠에는 기획을 반영할 수 있는 수 많은 가능성들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이런 가능성에 대해서 좀더 상상력을 발휘해서 고민하고 기획을 표현해야 합니다.
하지만 창의적인 고민은 그 자체만으로도 고민할 시간을 필요로 하지만 게임에 구현하기 위해 기술적인 장벽을 만나기 쉽습니다. 공짜는 없으니까요. 든든한 투자자와 서로의 실력과 열정을 믿는 동료 개발자들을 만난다면 좀더 쉬워지겠지만 많은 경우 개발 기간이 늘어나거나 야근을 낳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서 뚜렷한 기준이나 해결책은 없고 매 상황마다 최선을 다해서 똑똑한(Smart) 결정을 해야겠죠.
첫 번째 주제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 창의적으로 미리 상상하고 머릿 속에서 구체화된 것을 묘사하는 아티스트가 되자.
두 번째, '숲을 먼저 보고 나무를 보자'에 대해 얘기 해보겠습니다. 앞서 첫 번째가 작업 전 준비단계에 대한 것이였다면 두 번째는 작업을 진행할 때의 얘기입니다. 먼저 그림 한 장 보겠습니다.
그래픽 작업을 할 때 소요되는 시간 대비 향상되는 품질(Quality)을 간략하게 보여주는 그래프입니다. 10은 열흘을 의미합니다. 정확히 자를 대고 그린건 아니라서 위치가 삐뚤어졌다거나 하는 지적은 참아주시구요~ ^^
예를 들어 어떤 아티스트에게 열흘이라는 기간에 해야하는 일이 주어지면 의외로 많은 경우 열흘 째에 결과물을 내놓습니다. 그런데 미리 완성 해두고 널럴하게 놀던 피를 토하며 철야를 해서 열흘쨰에 겨우 맞추던 상관 없이 열흘 째에 첫 결과물이 나온 것은 잘못된 것이며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완성한 것입니다.
만약에 1.5일이나 3일째에 다소 민망한 품질의 결과물일지라도 협업을 하는 연관 작업자에게 가 데이터(Dummy)를 일찍 전달했더라면 좀더 넓은 시각으로 다른 오브젝트들과의 밸런스를 살필 수 있고, 이 단계에서 생각지도 못한 시스템적인 문제점들을 많이 찾아낼 수 있습니다. 때로는 새로운 문제점이 너무나 강력해서 그전까지 고민했던 이슈들이 하찮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처럼 넓은 시각으로 숲을 먼저 봐야 되는 것의 중요성은 사실 아티스트들도 본능적으로는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캐릭터가 5명 등장하는 포스터용 일러스트를 혼자서 그린다고 했을 때 캐릭터 한 명만 죽어라 방망이 깎으며 퀄리티를 올리진 않을테니까요. 다른 캐릭터와의 조화도 봐야 하겠지만 배경도 같이 고민하면서 전체적으로 퀄리티가 상승하는 쪽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아티스트는 미완성인 결과물을 설익은 채 공개하는 것을 무척 꺼려합니다. 그리고 평범하지 않은 성격들도 유난히 많은 직군인지라 별의별 일들이 다 있습니다. 혹은 아티스트와 상관 없이 팀의 운영이나 커뮤니케이션 문화가 잘못 정착되어서 별다른 커뮤니케이션 없이 모두가 묵묵히 결과물만 제 시간에 뽑아내는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팀에 안좋은 의미의 정치가 심해서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설익은 결과물에 대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거나 감정적인 꼬투리를 잡는 상황도 있겠죠.
글을 쓰면서도 좀 우울해지는군요...
쉽진 않겠지만 '좀더 일찍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의 중요성을 다 같이 공감하고 서로 믿으면서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블리자드 개발자의 강연에서도 비슷한 취지의 내용을 들었었는데요, 실버문 지역이 처음 제작될 때 다들 각자의 구역만 열심히 만들고 모두 붙여보는 시도를 너무 늦게 해서 엄청나게 고생했다고 하더군요. 그 이후로 블리자드에서는 미리 미리 붙여보지 않고 부분적인 퀄리티만 신경쓰는 모습에 대해서 '실버문 짓 한다' 라는 말이 생겼다고 합니다. 오래 전 들은 강연이라 정확하진 않아도 대충 내용은 맞을겁니다.
여기까지가 이번에 말하려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미리 생각좀 하자는 것
두 번째는, 방망이 깎지 말자는 것
(본 내용 끝)
(잡설 시작)
이곳은 재미있는 글이 자주 올라와서 매일 오지만 올 때마다 마감의 압박이 대단합니다.
게다가 최근에 쓴 책에서 밑천을 대부분 탕진한 터라 고민이 많네요... T_T
날짜 한달 주기로 어떻게 안될까요~~
참고로 여기에서 '아티스트'의 범위는 컨셉 일러스트레이터, 3D 모델러, 3D/2D 애니메이터 등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입니다.
말하려는 주제는 두 가지인데요,
1. 작업 전 - 머리 속에서 구체화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2. 작업 할 때 - 숲을 먼저 보고 나무를 보자
당연한가요? ^^
먼저 '머리 속에서 구체화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에 대해 얘기 해보겠습니다.
작업자 머리 속에서 완성된 모습이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은 상태로 비주얼 작업을 하는 개발자를 가끔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사람은 아티스트라는 단어를 붙이기도 민망한데요. 그래픽 툴의 화려한 필터나 플러그인들을 주로 사용해서 사람들의 눈을 현혹시키는 결과물을 곧잘 만들어내긴 하지만 그게 다입니다. 툴이나 플러그인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무엇이 우선이고 더 중요한지를, 세계를 놀래킬만한 창작의 레벨을 말하는겁니다. 요즘은 전반적인 수준이 상향 평준화 되어서 찾기 힘든 레어(Rare) 클래스입니다.
사전 이미지화는 비주얼 그래픽 파이프라인의 최초를 담당하는 컨셉 아티스트에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닙니다. 컨셉 원화나 개발 원화가 아무리 충실하게 만들어져있더라도 3D 입체로 만들어지려면 생각보다 많은 부분을 상상하고 창조해야합니다. 애니메이터 역시 상상하고 창조해야 하는게 정말 많습니다. 이펙트도 마찬가지구요.
아주 오래 전 손 그림(연필이나 붓 등)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타블랫(포토샵 등)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논쟁이 있었습니다. 요즘도 어디선가 있을법한 논쟁인데요. 천리안 하이텔 뭐 이런 시절의 얘기입니다. 정말 옛날이죠. 당시 결론이 어떻게 났는지 잘 모르지만 지금 생각으로는, 손도 타블랫도 도구라서 자신의 머릿 속 이미지를 가장 빠르고 편하게 전달할 수 있는 도구를 쓰는게 정답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서 도구는 무엇을 쓰던지 상관 없고 사실 중요한건 그 사람의 머릿 속 이미지라는거죠.
그런데 여기에 말하고싶은 것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창의적으로 이미지화를 해야한다는 건데요. 이미지화는 익숙한 소재에서 좀더 쉽게 가능하겠지만 익숙하다고 해서 쉽게 넘겨서는 안됩니다. 예를 들어 마법사가 강력한 마법을 쓰기 위해서 공중에 살짝 뜬채 옷이 펄럭거리고 주변의 기운이 회오리치며 몰려들고 등과 목을 뒤로 꺾으며 캐스팅을 하는 설정은 너무 뻔하죠. 이런건 너무 뻔해서 사전 이미지화가 너무 쉽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예를 들어 실생활에서 서로 다른 사람 열명이 동일한 속도로 나란히 걸어가는 상황을 가정해보면 체중이나 성격 등 수많은 변수에 의해서 모든 걸음걸이가 다 개성이 있습니다. 만약에 셜록 홈즈가 열명의 걷는 모습을 주의깊게 관찰한다면 아마도 30초만에 그 사람들의 서로 다른 성장 환경이나 성격, 어쩌면 질병 까지도 유추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사소한 장신구에서부터 미묘한 시선의 변화 등 수 많은 단서들이 가득할테니까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게임 컨텐츠에는 기획을 반영할 수 있는 수 많은 가능성들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이런 가능성에 대해서 좀더 상상력을 발휘해서 고민하고 기획을 표현해야 합니다.
하지만 창의적인 고민은 그 자체만으로도 고민할 시간을 필요로 하지만 게임에 구현하기 위해 기술적인 장벽을 만나기 쉽습니다. 공짜는 없으니까요. 든든한 투자자와 서로의 실력과 열정을 믿는 동료 개발자들을 만난다면 좀더 쉬워지겠지만 많은 경우 개발 기간이 늘어나거나 야근을 낳기도 합니다. 이에 대해서 뚜렷한 기준이나 해결책은 없고 매 상황마다 최선을 다해서 똑똑한(Smart) 결정을 해야겠죠.
첫 번째 주제를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 창의적으로 미리 상상하고 머릿 속에서 구체화된 것을 묘사하는 아티스트가 되자.
두 번째, '숲을 먼저 보고 나무를 보자'에 대해 얘기 해보겠습니다. 앞서 첫 번째가 작업 전 준비단계에 대한 것이였다면 두 번째는 작업을 진행할 때의 얘기입니다. 먼저 그림 한 장 보겠습니다.
그래픽 작업을 할 때 소요되는 시간 대비 향상되는 품질(Quality)을 간략하게 보여주는 그래프입니다. 10은 열흘을 의미합니다. 정확히 자를 대고 그린건 아니라서 위치가 삐뚤어졌다거나 하는 지적은 참아주시구요~ ^^
예를 들어 어떤 아티스트에게 열흘이라는 기간에 해야하는 일이 주어지면 의외로 많은 경우 열흘 째에 결과물을 내놓습니다. 그런데 미리 완성 해두고 널럴하게 놀던 피를 토하며 철야를 해서 열흘쨰에 겨우 맞추던 상관 없이 열흘 째에 첫 결과물이 나온 것은 잘못된 것이며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완성한 것입니다.
만약에 1.5일이나 3일째에 다소 민망한 품질의 결과물일지라도 협업을 하는 연관 작업자에게 가 데이터(Dummy)를 일찍 전달했더라면 좀더 넓은 시각으로 다른 오브젝트들과의 밸런스를 살필 수 있고, 이 단계에서 생각지도 못한 시스템적인 문제점들을 많이 찾아낼 수 있습니다. 때로는 새로운 문제점이 너무나 강력해서 그전까지 고민했던 이슈들이 하찮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처럼 넓은 시각으로 숲을 먼저 봐야 되는 것의 중요성은 사실 아티스트들도 본능적으로는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캐릭터가 5명 등장하는 포스터용 일러스트를 혼자서 그린다고 했을 때 캐릭터 한 명만 죽어라 방망이 깎으며 퀄리티를 올리진 않을테니까요. 다른 캐릭터와의 조화도 봐야 하겠지만 배경도 같이 고민하면서 전체적으로 퀄리티가 상승하는 쪽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아티스트는 미완성인 결과물을 설익은 채 공개하는 것을 무척 꺼려합니다. 그리고 평범하지 않은 성격들도 유난히 많은 직군인지라 별의별 일들이 다 있습니다. 혹은 아티스트와 상관 없이 팀의 운영이나 커뮤니케이션 문화가 잘못 정착되어서 별다른 커뮤니케이션 없이 모두가 묵묵히 결과물만 제 시간에 뽑아내는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팀에 안좋은 의미의 정치가 심해서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설익은 결과물에 대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거나 감정적인 꼬투리를 잡는 상황도 있겠죠.
글을 쓰면서도 좀 우울해지는군요...
쉽진 않겠지만 '좀더 일찍 커뮤니케이션 하는 것'의 중요성을 다 같이 공감하고 서로 믿으면서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블리자드 개발자의 강연에서도 비슷한 취지의 내용을 들었었는데요, 실버문 지역이 처음 제작될 때 다들 각자의 구역만 열심히 만들고 모두 붙여보는 시도를 너무 늦게 해서 엄청나게 고생했다고 하더군요. 그 이후로 블리자드에서는 미리 미리 붙여보지 않고 부분적인 퀄리티만 신경쓰는 모습에 대해서 '실버문 짓 한다' 라는 말이 생겼다고 합니다. 오래 전 들은 강연이라 정확하진 않아도 대충 내용은 맞을겁니다.
여기까지가 이번에 말하려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미리 생각좀 하자는 것
두 번째는, 방망이 깎지 말자는 것
(본 내용 끝)
(잡설 시작)
이곳은 재미있는 글이 자주 올라와서 매일 오지만 올 때마다 마감의 압박이 대단합니다.
게다가 최근에 쓴 책에서 밑천을 대부분 탕진한 터라 고민이 많네요... T_T
날짜 한달 주기로 어떻게 안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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