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보인다
때는 2003년 중순부터 2004년 2월 클로즈베타를 지나 오픈 직후 팡야 프로젝트의 개발이 한창일 때의 일입니다.
당시 팡야 AD로서 캐릭터 기본 체형 제작 뿐만 아니라 수 많은 의상들을 모델링 하고 텍스쳐를 손으로 그려야 했는데요. 나중에는 옷의 질감이나 주름 표현의 달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나름 생활의 달인이였던거지요. 작업을 하는 본인이 깜짝 놀랄 정도로 바디페인터 브러시가 슬쩍 지나가기만 해도 아름답고 섹시한 주름이 만들어지곤 했습니다. (이 부분에서 돌 던질 지인들이 좀 있을 것 같네요 ㅡ,.ㅡ)
당시에는 요즘처럼 쉐이더를 통해서 질감을 표현하는 방식은 아니였고 순수하게 디퓨즈 텍스쳐만으로 모든 표현을 했었습니다. 하루 종일 회사에서 옷의 주름, 질감, 그리고 재봉선과 씨름을 하다 보니 주변 개발자들은 물론이고 지하철을 타거나 길거리를 걸어갈 때에도 눈에 들어오는 것은 주름, 질감, 그리고 재봉선이였습니다. 그렇게 눈여겨 봐둔 특징들은 상당 부분 게임에 반영이 되었구요.
놀라운 것은 평소와 같은 지하철이지만 내 관심사가 달라지면서 완전히 새로운 공간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게 된 것이죠(투시력이 생기거나 한건 아닙니다). 보려고 해서 보는게 아니라 세상이 달라보이는 경험이였습니다. 물론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오긴 했습니다... 실무 비중이 많이 줄어든 탓도 있구요.
짐작이긴 하지만 디즈니 3D 라푼젤의 기술팀에서 자연스러운 머리카락을 연구할 당시에는 아마 주변 사람들의 머리카락만 눈에 들어왔을겁니다.
이처럼 어떤 사람이 관심사가 명확할 때에 받아들이는 정보의 종류와 품질은 비교할 수 없을만큼 달라지게 됩니다. 다시 말해서 목표가 명확한 사람은 잠을 자는 시간 외에는 모두 성장하는 시간이라고 봐도 됩니다.
극장에서 영화를 볼 때에 오디오 감독을 목표로 하는 사람의 경험과 시나리오 작가를 목표로 하는 사람의 경험은 완전히 다른 경험일 것입니다. 물론 극장에 영화를 보러 갈 때에 '나는 이번 영화를 통해서 성장하고야 말겠어' 라고 다짐하고 가는 사람은 없겠지만 목표가 명확한 사람은 평범한 생활 자체가 감각을 키우는 훈련인거죠.
반대로 무엇을 해야할지 목표가 불명확한 사람은 그 기간 동안은 분명히 정체되어 있습니다. 뭔가 배워야 할 것 같고 뭔가 해야할 것 같아서 이것 저것 해보더라도 목표가 없는 노력은 비효율의 극치입니다.
목적지가 명확해야 중간 경로가 확실해지고 당장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언가에 몰입하는 순간 성장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