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UX 기획 - 02. how
01. what
02. how
03. storytelling
04. prototyping 上
05. prototyping 下
시작하기에 앞서, 존 라도프가 지은 'Gamification & 소셜게임'이라는 책의 165페이지에서 발췌한 다음의 내용을 살펴보자.
게 임은 겉으로는 단순한 오락거리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유는 인간의 심리학적, 생리학적 동기요인에 작용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것이 무슨 말인지 살펴보기 위해, 팜빌(FarmVille)을 오직 기능 측면으로만 묘사해보면 어떻게 보일지 생각해보자. - 농부로서 연속적인 레벨업하기 - 농장처럼 보이는 2D 그래픽 인터페이스와 상호작용하기 - 농작물을 심고, 비료 주고, 수확하기 위해 스크린을 클릭하기 - 농작물을 시장에 팔기 - 농장을 꾸밀 장식물을 구입하기 위해 게임머니 축적하기 - 고급 과제 완수를 위해 친구를 농장 '이웃'으로 전환시키기 이 설명은 그다지 와닿지 않는다(게임 업계의 많은 사람이 농장 운영에 관한 게임이 이토록 인기를 끌 줄은 몰랐다). 농장을 운영한다는 이해하기 쉬운 게임의 내러티브는 많은 사람을 끌어들이는 데 도움이 됐다. 기능과 규칙이 성공적인 게임의 뼈대를 구성할지는 모르겠지만, 팜빌을 성공으로 이끈 점은 사람들에게 느낌을 주는 방식이었다. |
FarmVille ⓒ Zynga / screenshot from Ricky's farm
'(농부로써) 농장을 운영한다'라는 what이 직접적으로 전달될 유저의 감성적 경험에 대한 내러티브를 찾아가기 위한 것이라면, '농작물을 심고, 비료 주고, 수확하기 위해 클릭한다'라는 how는 그를 뒷받침 하기 위한 구조적이며 기능적인 규칙들이 된다.
이처럼 앞의 what 연재에서 다뤘던 내용은 누구라도 이해하기 쉬운 디렉션 비전 혹은 목표를 만들기 위해 어떻게 발상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였다. 위에 대입해 보자면, 그 의도는 기능과 규칙의 뼈대 위에서 개발자던 유저던 누구라도 '이해하기 쉬운 게임의 내러티브'를 구성하려고 함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그 기능과 규칙의 뼈대를 통해 what을 좀더 점검하고 더 강력하게 만드는 how로 접근해보자.
how는 말 그대로 어떻게 만드느냐에 대한 고민이지만, 컨셉 혹은 비전을 기획하는 단계에서 다루어야 하는 '어떻게'는 무슨 툴을 쓴다, 어떤 메커니즘이나 로직을 쓴다는 기술적인 개념과는 조금 다르다. 앞의 글에서 다뤘던 what이 대략적으로 정해졌다면, 그 what이 가진 무엇 혹은 내러티브를 실제로 구현해내기 위해 기획적으로 필요하거나 고려해야 할 세부적인 사항에 어떤 것이 있고 어떻게 구성해야 하느냐를 미리 꺼내보는 것이다.
이 과정은 어떻게 보면 실제 기획서를 작성하는 단계에서나 고민할 부분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기획서에서 필요로 하는 상세한 로직이나 메커니즘, 수치에 중점을 두지 않고 최초 단계부터 유연하게 커뮤니케이션 하기 위한 용도로써 본다면, 애초에 구현할 수 없는 시행착오를 최소화하면서 일반적인 팀의 협업 파이프라인의 피드백을 통해 가능성과 특장점을 좀더 구체화하고 끌어올릴 수 있는 과정이 될 수도 있다.
좀더 쉬운 설명(과연 잘 될지;;;;)을 위해, 여기서부터는 가상의 프로젝트에 대한 what을 통해 그 how를 구성하는 기능과 규칙, 그리고 발생할 수 있는 피드백의 사례들을 살펴보자.
엄청 독특하고 재미있을 것 같다는 느낌은 상당히 적은 듯 하고, 세스고딘이 말했던 '리마커블'한 그 어떤 것도 그다지 없어보이며, 본 연재에서 다루고자 하는 감성 경험에 대한 내러티브는 왠지 없다시피 한데다가;; PC 온라인(멀티) 기반이라 가정한다 해도 카트라이더나 스틸독을 비롯해 멀게는 번아웃이나 데스트랙 등 이미 시중에 나와있는 유사한 게임들도 주루룩 떠오르며 스쳐지날 뿐이니... 아, 왜 이런 예시를 생각해낸걸까 난..
하지만 일단 설명을 위한 예시니까 양해해주실 것이라 믿고;;;; 어쨌든 위와 같이 프로젝트의 what을 정의했다고 하면, 이를 위해 먼저 정리되어야 할 how는 간단하게 다음과 같은 기능과 규칙의 나열들로 시작할 것이다.
벗어날 수 없도록 정해진 트랙이 아닌, 도시 형태의 공간 위를 달린다.
차량은 다른 차량 혹은 배경 환경과 충돌하는 등 상호작용 할 수 있다.
총과 같은 무기를 사용해 공격하고 공격당한다.
차량은 파괴될 수 있다.
명확한 출발점과 골인지점이 있기에 완주가 가능하다.
완주해 보상을 얻고, 보상을 통해 성장해 다음 단계에 도전할 수 있다.
기타 등등..
플레이어가 캐릭터 없이 차량을 소유하나? 아니면 차량을 운전하기 위한 캐릭터로부터 차량을 소유하나?
차량이나 캐릭터를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는가? 파츠 커스터마이징의 수준은? BM과 연계는?
그래픽이던 재미던 엇비슷한 수준이라면 차라리 카트라이더를 하지 않을까...
차량의 운전은 물리와 운동 법칙에 따라 사실적으로 움직이는거? 단순화 해 아케이드 게임처럼 직관적으로 휙휙?
PvE가 메인 플레이 비중인가? PvP가 메인 플레이 비중인가? 혼합되었다면 유저경험의 흐름 순서는?
레이싱은 방을 만들어 들어가는 캐주얼한 방식? 아님 오픈월드를 달리다 발생하는 이벤트 혹은 자동 매치로 경쟁하는?
난 번아웃 파라다이스처럼 달리다 이벤트가 발생하는 방식이 좋던데? GTA는 아니지만 오픈월드 레이싱 느낌도 좀 나고.
시간 걸리는 본 게임 말고, 바로 쉽게 같이 할 수 있는 게임 모드들은 없나? co-op이나 서바이벌 레이스 같은 모드는 어때?
도시의 도로 위만 달리는거야? 그럼 도시는 병풍인데.. 주변 사물이나 건물 등을 이용한 입체적 경로는 안될까?
배경에 놓여있는 사물을 파괴하거나 밀어내고 폭발시키는 등의 활용이 가능해? 이를 통해 상대를 방해할 수 있는 수준도?
스플릿세컨드나 모터스톰3을 보면 배경이 알아서 파괴되고 무너져서 압박해오던데, 그런건 어떨 것 같아? 만들기 어렵겠지만..
전투를 하려면 조준 조작을 해야하는데, 달리면서 상하좌우 시야를 확보해 본다는게 어렵지 않을까?
헤일로나 모던워페어, 스플릿세컨드 플레이 할 때 차량 탄거랑 비슷한 느낌의 조작인거야?
움직임 조작과 전투 조작이 동시에 일어나야 할텐데, 어떤 화면 UI 구성과 조작 방식을 사용할껴?
총만 쏠 수 있어? 스파이더 지뢰나 낚아채는 윈치(견인용 장치) 같은 교란형 도구도 있으면? 그러고보니 방어 공방은 없는겨?
차량의 파괴는 HP가 소모되야만 되는거? 그냥 바퀴만 터진다던지하는 파츠별 파괴와 그에 연계된 효과를 활용할 수는 없나?
그렇게 된다면 조낸 타이어만 펑크 낸다던지, 연료통만 노리는 지뢰라던지 해서 달성과제(트로피)까지 연계하면 재밌겄다!
그래서 이 게임의 목적은 뭔데? 업그레이드로 무한 경쟁 반복인지, 스토리 상 어떤 목표를 향한 것인지? 모든 단계의 끝은 어디?
기타 등등..
얌전하게 써있기는 하지만.. 사실 실제 개발 단계라면 저 정도에서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좋은 아이디어들을 덧붙여 브레인스토밍에 힘을 실어줄 수도 있겠지만 예상 외의 다양한 질문이 쏟아질 수 있고, 우려사항을 비롯해 더 많은 질책과 힐난(!)의 냉험한 눈초리가 암암리에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피드백에 처음부터 일관된 답을 줄창 할 수 있다는 사기꾼능력자라면 좋겠지만, 아이디어를 떠올린 처음부터 완벽하게 무슨 게임을 만들 것인지 차곡차곡 다 쌓아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때문에, 아직 그 방향성을 완전히 정의하지 못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볼 수도 있다. 이것은 비전을 찾아가는 브레인스토밍 과정의 한 부분일뿐, 그 하나하나의 사항들에 대해 되돌아 봤을 때 what을 바꿔야 하나까지 우려할 필요는 없다. 물론 어디선가 높은 곳에서 직격된 완전 뜬금없는 아이디어가 아닌, 엄청 리마커블한 대격변의 아이디어가 나왔다면 다시 what을 고민해봐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는 프로젝트나 팀의 상황에 맞춰 달라지는 경우이니 일단 이 얘기에서는 제외하고;;
어쨌든, 사전부터 충분한 자료 조사와 담당자한테 물어보기 등을 먼저 수행해 자체적인 FAQ를 먼저 만들어 최대한 그 인식의 갭을 줄여나간 상태로 함께 피드백을 주고 받고 그 아이디어를 쌓아간다면, 중간에 의견이 무시당했다느니 갑자기 엎은 것 같다느니하는 불필요한 오해를 일으키는 일은 최소화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결과로 이렇게 피드백에서 다뤄질 수 있는 더 파고든 기획/구현적 사항이 글로써건 마인드맵의 형태로건 정리돼 있다면, 그것이 이 게임의 구체적이고 일관된 방향성의 특징(feature)을 규정하게 되므로 '디렉션 비전'을 뒷받침 해주는 강력한 근거로 계속 남아 이후의 기획에 있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제 어떤 요소에서 특징적인 재미가 발생할 것인지를 좀더 구체적으로 파악해보자. 어쩌면 그 요소들 중 적절한 것들을 찾아 이 게임 고유의 쿨-피처 혹은 리마커블-피처로 좀더 강화할 방법을 찾아볼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일단 이 예시에서는 피드백을 검토한 결과 기존 작품들의 차별화를 위해, '리얼한 물리 운동계를 사용하지만 키보드를 사용한 이동 조작과 마우스를 통한 시점과 전투 조작을 중심으로 삼아, 빠르게 달린다보다는 좀더 오픈월드(혹은 샌드박스) 타입의 전술과 전략으로 벌이는 난장판 전투 레이스'를 만든다는 형태로 변경해 보았다. 최초의 무엇을 하는 어떤 게임이다까지를 누가 제시했던, 이제는 모두가 함께 생각하고 공감할 수 있을 단계까지 정리해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어째 오픈월드 속 막가는 난장판 레이스..라는 점이 마음에 든다.
이것을 굳이 레퍼런스 하이컨셉화 한다면, '스플릿세컨드의 조작계와 연출 + 헤일로의 차량 전술 + 번아웃파라다이스의 월드구성과 퀘스트트리거 + α'처럼 정리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장르 특성 상, 이런 레퍼런스가 전체 팀원에게 공감대를 얻을만큼 다 잘 나간 게임들도 아니고 다들 그렇게 해본 것 같지도 않아 보편적이지 못하다면, 직접 글이나 스케치로 만들어보거나 참고할만한 유사 스크린샷이나 플레이 영상으로써 대체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왜냐하면 실제로 플레이를 경험해보거나 깊게 살펴보지 못한 샘플에 대한 설명은 자칫 비경험자에게 잘못된 이해를 불러일으켜 나비효과(!)를 일으킬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구성요소들이 모두에게 같은 모습으로 공유될 수 있을 정도로 구체화 되면, 각 분야별 담당자들이 그 우선순위에 따라 해당 기능을 구현하기 위한 실제 업무(task)를 아래처럼 시작해 각 실무 파트에 맞는 러프한 기능 명세를 뽑아낼 수 있을 것이다.
룩(Look)에 대한 요소는 부분유료화 BM으로, 성능에 대한 부분은 인-게임 성장과 보상으로 가져간다.
차량은 무게와 중력, 가속과 충돌 등에 있어서만 물리 운동 법칙을 따르지만 본격 레이싱은 아니니 자동변속기로만 조작된다.
도로 뿐만 아니라 복층 고가도로, 터널 벽 타기, 빌딩 옥상 등도 이용할 수 있도록 3차원 좌표계를 사용한다.
충돌로 인해 건물이나 사물을 파괴하고 밀어낼 수도 있도록 배경 구성물도 Entity화 하고 동적 객체로 분리한다.
동적 객체가 접촉, 충돌, 파괴 시 발생시키는 상태이상 효과가 PC나 NPC, 터레인에 부가될 수 있다.
상대를 방해(파괴, 밀기, 끌기, 붙잡기 등등)할 수 있는 방법으로써 모든 종류의 무기의 등장을 고려해야 한다.
차량은 상태이상이나 방해행동에 따라 모두 다르게 인터랙션해야 하기 때문에, 각 파츠별 파괴와 디버프 기능을 연계한다.
완주 시 파츠에 대한 보상이나 랭킹에 대한 보상이 주어지고 그를 타인에게 부각시킬 수 있도록 UI를 만든다.
이 게임은 스토리 기반이 아닌 PvP를 메인 게임 플레이로 가져가지만, 로비와 방의 구조를 월드 트리거에서 동적으로 제어한다.
기타 등등..
기능 명세가 나오게 되면 실질적으로 각 작업을 시작할 수 있는 상태가 될 수 있지만, 아직 기획에 있어 미시적-거시적 게임 모델이 수립되지 않은 상태인지라,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가야 할 게임의 전체 유저경험 중 극히 대표적인 플레이(대부분의 경우, 이동과 전투, 멀티)를 위한 '프로토타이핑'용 수준에 그칠 수 밖에 없다. 모든 기능과 메커니즘은 유기적으로 얽혀져야 지속적으로 동기를 부여하고 몰입시키며 순환할 수 있기 때문에, 충분한 시뮬레이션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 주의할 점은, 지금 이 what & how의 유저경험 설계의 과정이 실제 기능 개발을 위한 단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본 연재에서 다루고자 함은 프로토타입을 제작하기 위한 기획적 발상과 스토리텔링의 접근을 이야기하는 것이라, 위의 기능 명세가 최후까지 유지되고 변경되지 않을 기능이자 로직이며 데이터 구조일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통한다면 프리-프로덕션에 있어서 대단한 기획서가 없더라도 팀 전체가 좀더 빠르고 유연한 반복 개발(iteration)을 통해 구체적 모습을 예측해 볼 수 있거나 일부를 구현해 점검해 볼 수 있는 프로토타입을 뽑는데 좀더 힘을 실어갈 수 있게 해, 추후 실제 구현의 우선순위를 수립하거나 미시적-거시적 기획의 절차를 구성할 때에도 유효하게 쓰일 것이다.
정리하자면, 기능과 규칙을 미리 예상해보는 how의 과정은 기획적으로 what에서 규정한 내러티브의 선언을 좀더 구체적으로 실제 체험 가능한 재미 요소에 가깝게 정의하고, 예측되는 오류나 발전방향을 미리 함께 점검해 보는데 그 목적이 있다. 기획이 모든 분야와 구성에 있어 how를 다 찾아낸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 '어떻게'에 대해 함께 논의할 수 있는 기준점을 마련하고 그를 취합해 공감대를 기반으로 한 what의 방향성을 덧붙이고 강화해 프로덕션의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향성을 만들어 프로젝트의 비전으로써 끌고갈 수 있는 가치를 갖게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번외로, 업체나 팀마다 용어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유사한 접근 사례로써 유저경험(user story)를 기능(feature)로 쪼개고, 이를 업무(task)로 만들어 실무 작업을 진행하는 매니지먼트의 방법으로써 FF14의 리빌딩을 맡고 있는 스퀘어에닉스의 하시모토요시히사 CTO가 컨퍼런스에서 발표한 게임 개발 프로젝트 매니지먼트 강좌도 읽어보셨으면 한다.
다음에는 what과 how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좀더 본격적으로 필자가 프리-프로덕션 기획에 대해 하고자 했던 내용인 '시스템기획曰, 우리도 경공으로 벽 좀 타죠'라던가, '컨텐츠기획曰, 초반부 튜토리얼 던전 2개랑 집단포위형 몹 AI 필요해요' 등등 같이 앞뒤 다 짤린 기획 스펙 말고, 유저경험을 고려해 개발팀 내 공감까지 이끌어내 볼 수 있는 방법으로써 '왜?'를 통해 생각해보는 storytelling 기획의 이야기 해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