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메커니즘 페스티벌 주최 후기
졸업한지는 꽤 됐지만 요즘도 가끔 학교 동아리 활동하는 데에 가서 찝적대기도 합니다. 유피넬(UPnL)이란 곳인데 게임개발 전문 동아리는 아니지만 요새 게임에 관심 있는 애들도 많은 듯해서 게임 메커니즘 페스티벌이란 행사를 주최했었습니다.
행사 동기와 목적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동기
게임이 재미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멋진 최신 그래픽, 예쁜 캐릭터…
이런 화려한 외면을 다 벗기더라도 재미있는 게임의 메커니즘은 영혼처럼 남아있지 않을까!
목적
제한된 그림과 소리 자원을 활용해 최대한 재미있는 게임의 메커니즘들을 개발해보자.
여기서 메커니즘은 게임을 세 요소로 나눠서 보는 MDA 모델에서의 메커니즘을 말합니다.
슈퍼마리오에서 가져온 20종의 그림과 인터넷에 떠돌아다니는 적당한 웨이브 파일을 긁어모은 7종의 효과음을 제공했으며 이 그림과 소리 외의 다른 자원을 쓰면 안 되는 것이 규칙이었습니다. 행사는 첫 날 오전 11시부터 오후 11시까지 12시간, 다음 날 오전 11시부터 정오까지 총 13시간을 개발에 사용하고 오후 2시까지 2시간 동안 시연 및 평가 시간을 가졌습니다. (근데 밤 샌 사람들이 많아서 개발 시간은 사실상 24시간 정도...)
개발 기반으론 C# 윈도우 폼 프로젝트에 제공하는 그림, 소리를 쉽게 출력할 수 있는 간단한 프레임워크를 만들어서 제공하였습니다. 사용 언어 제한은 없고 별도의 라이브러리를 사용해도 상관없었지만 제가 짠 기본 프레임워크가 훌륭해서 그런지(?) 참가자 모두 C#을 썼더군요.
총 참가자는 10명 정도... 게임은 모두 6개가 나왔고 심사는 참가자들과 관전자들의 가장 재미있었던 게임을 세 개 적어서 내서 취합하는 형식으로 진행됐습니다. 우승작, 준우승작을 소개해드립니다.
우승작, 돌려라! by 김알찬, 황호기
스테이지를 돌려 물건들을 적절히 이동시켜서 상자에 넣는 게임입니다. 자체 물리 엔진으로 구동되며 물건들이 합쳐지면 다른 물건으로 바뀌는 특징이 있습니다. 스크린샷 예시의 경우엔 아래 상자에 물음표 모양을 넣어야 되는데 있는 건 노란 별과 파란 별 밖에 없죠. 그냥 넣으면 폭발하면서 실패합니다. 노란 별과 파란 별을 합치면 물음표 모양으로 바뀌는데 그걸 상자에 넣어야 합니다. 물건이 남으면 안 된다는 룰도 있고요. 스테이지가 총 11개였던 것 같은데 난이도도 적절하고 재미있어서 몰표를 받고 우승했습니다.
준우승작, 동족상잔 by 심규민
특훈류 (일명 벫똏) 게임으로 자신의 캐릭터를 움직여서 사방에서 날아오는 적들을 피해야 하는 게임입니다. 특이한 점은 적과 부딪쳤을 때 나와 다르게 생긴 적이라면 죽는 게 아니라 그 적으로 변신 된다는 겁니다. 나와 똑같이 생긴 적과 부딪쳤을 때만 죽습니다. 마우스로 총알을 발사해 적을 잡을 수 있는데 나와 똑같이 생긴 적이 점수를 많이 줍니다. 말 그대로 동족상잔을 조장하는 게임. 꽤 어려운 난이도와 그 와중에 네트워크 상으로 구현한 점수 랭킹 시스템 덕에 인기를 끌었습니다.
게임 잼처럼 48시간 동안 사람들 개발하게 만드는 건 너무 비인간적인 것 같아서 처음엔 하루 12시간 만에 개발, 심사까지 다 하려고 했었는데 테스트로 해보니까 역시 시간이 부족하더군요. 공식 시간은 밤 새지 말라고 밤에 끝나도록 정해놨지만 역시 만들다보면 멈출 수 없어서 인간다운 개발은 실패. 차라리 약간 공모전 비슷하게 주제 내주고 한 일주일 정도 기간을 두어서 만들고 싶은 만큼 만든 다음 마지막 날에만 모여서 개발, 심사하는 방식은 어떨까 싶기도 하네요.
막 보자마자 기똥찬 느낌이 딱 드는 메커니즘이 나오진 않은 것 같아서 아쉽지만 첫 술에 배부르랴, 여러 번 하다보면 그런 보물 같은 메커니즘을 발굴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고요. 그렇게 엄청난 아이디어까진 아니더라도 우승작 같은 경우는 폴리싱 잘 해서 폰 게임으로 만들면 인기가 괜찮을 것 같다는 의견이 많이 있었습니다. 게임들이 애초에 기대했던 것보다도 완성도와 밸런스면에서 좋게 나와서 의외였어요.
게임 회사에서 이런 형식으로 신작 게임의 핵심 메커니즘을 발상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