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게임개발에서의 스토리와 내러티브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7. 23. 09:26

이번에 간단히 끄적여 볼 포스팅은 여기저기서 많이 논의되고 있기에 다루기 좀 무서운(?!) 게임의 스토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실 게임 UX 기획 연재할 때부터 생각하고 있던 아이템이라 원래 좀더 길고 장황하게 쓰고 있다가, 그림도 없이 텍스트로만 정리되다보니 지루하고 안읽히는 것 같아 그냥 짧게 줄인 글로 정리해 보았다.

 

 

A. 서사/서술보다는 상황을 통한 스토리 전달

 

 플레이어는 게임을 진행하면서 끊임없이 목표를 부여 받아 해결해 나간다. 이 목표는 단기적인 목표 뿐만 아니라, 전체를 관통하는 장기적인 목표까지 포괄한다. 리니지의 경우는 원작 만화의 반왕 켄라우헬과 데포로쥬 왕자의 갈등 구조를 참조해 쫓겨난 왕자가 동료를 모아 ‘공성전’을 통해 영지를 차지하고 지배해 나간다라는 장기 목표 아래, 성장과 도전의 모든 상황을 사용자경험의 흐름으로 연결시켰고, 블레이드앤소울의 경우는 끊임없는 대사 전달과 적재적소의 연출씬을 통한 몰입을 통해 ‘복수’라는 큰 테마 속에 스토리 위주로 사용자경험의 흐름을 연결시켰다.

 

 두 게임 모두 기본적인 전제는 '영지 탈환'이나 '스승의 복수' 같은 스토리 테마 속에 녹아있다. 하지만 게임 컨텐츠의 구성에서는 차이를 보이는데, 리니지가 대사 전달이나 연계 퀘스트의 스토리텔링보다는 공성전을 위해 진행하는 과정 중의 갈등 구조(PK, 사냥터 점령 등)를 통해 창발적 경험을 이끌어내는데 반해, 블레이드앤소울은 (아직까지 보여지는 바로는) 유저의 창발성에 의존하기 보다는 철저히 계획된 대사 전달과 연계 퀘스트를 통한 스토리텔링을 통한 진행을 주요 경험으로 깔고 있는 듯 보인다. 물론 어느 것이 더 좋다 나쁘다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전자의 방법은 기획된 의도에 맞게 플레이 하는 유저의 참여가 쉽지 않다는 점, 후자의 방법은 의도를 전달하기엔 좋지만 반복적인 플레이에서는 매우 쉽게 지루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각각의 장단점이 있다. 온라인 게임이 되고 싶어한 패키지 게임 디아블로3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성장과 반복이 주요 순환 컨텐츠로 쓰여지는 온라인 게임에서 스토리 위주의 흐름으로만 게임 디자인을 하는 것은 지속적인 업데이트와 물량적 푸쉬가 뒤따르지 않는다면 그만큼 빨리 사용자가 이탈하게 될 위험성을 안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컨텐츠를 디자인할 때 어떻게 고민해 볼 수 있을까? 게임 UX 디자인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스토리가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는 이러한 위험성을 최소화 하기 위해서는 서사적인 이야기를 자잘하게 모두 만들어나가는 것 보다는 ‘왜 그러한 목표를 갖는지 그 당위성과 그 목표 하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그 행동에 있어 얼만큼 다양한 선택지를 갖는지, 그 선택지가 창발적 경험으로 이어져 반복하더라도 지속적으로 플레이 할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지’의 측면에서 접근해 갈 필요가 있다.

 

 즉, 플레이어가 처해질 상황을 제시하고, 그 상황 속에서 샌드박스처럼 대응할 수 있는 다양한 요소를 제공함으로써 서사적 스토리 진행이 아니더라도 내러티브의 흐름을 중심으로 해 플레이를 끌어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컨텐츠 디자인 작업에 앞서 이러한 형태로 전반적인 사용자 경험을 설정해볼 수 있다면, 그로 하여금 연속성을 갖는 내러티브를 제시하고 그 하위에 속할 플레이 컨텐츠를 설계해 좀더 당위성 있으면서도 서사적이 아님에도 일관되게 흘러가는 스토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좀비가 가득한 세상 속에서 '생존'이라는 테마 하에 게임을 만든다고 가정해 보자. 생존을 위해서는 물과 식량, 자신을 보호할 칼이나 총, 잠을 잘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이 필요하다. 내러티브의 연속성 하에 이를 구성해 보자면, '위험지역으로부터의 탈출 → 안전한 지역을 찾아가는 이동 → 주변 탐색을 통한 자원 확보 → 추가적인 생존자의 구출 → 자신이 속한 안전지대를 강화하고 세력을 형성 → 한정된 물자를 놓고 다른 세력과의 갈등' 같이 게임적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이러한 각각의 내러티브가 에픽 퀘스트를 설정하고 각 구역 간의 레벨을 디자인하는데 테마로써 쓰여진다면, '이동과 자원 확보' 같은 플레이를 '이목을 끌지 않고 회피하며 환경 진행' or '전면적으로 대항해나가며 전리품 수집' 같은 식으로 선택지를 나눌 수 있게 될 것이고, 이러한 선택지 내에서 '정찰 → 전술수립 → 대응' 같은 식으로 퀘스트를 짜 넣을 수 있을 것이다.

 

 

B. 당위성을 갖고 연계되는 행동을 통한 스토리 전달

 

 게임에서는 다양한 상황 속에서 그때그때에 맞춰 유연하게 동작하는 행동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는 플레이어블한 부분이 아니더라도 방향 전환할 때 벽을 딪는다던가, 환경 위에서 손발의 상황에 맞게 IK가 적용된다든가, 못올라갈 것 같은 지역을 벽을 타고 올라간다든가, 성장에 따라 행동의 범주가 늘어남으로써 못가던 지역을 진입하게 된다든가 하는 식으로 적용되고 있다. 하지만 온라인 게임에서는 콘솔 게임에 비해 이러한 부분이 야박(?)하게 적용되고 있었다.

 

 온라인 게임에서는 일반적으로 잘 쓰이지 않았던 무브먼트 요소 중 하나인 '벽 타기'를 놓고 생각해보자. 블레이드앤소울의 공개 이후, 경공이라든지 벽을 타는 플레이가 기본적으로 탑재되는 게임들이 많이 등장한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이다.) 여기서 플레이어가 ‘벽을 탄다’는 기능적 행동은 개발기획 시 시스템적으로 의미가 있을지 몰라도, 사용자의 재미 경험에 있어서는 그 자체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왜 그러한 행동을 해야 했는지, 그 행동에 있어 유저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이고 그를 통해 결과를 얻게 된다는 측면에서 행동 시스템을 접근할 필요가 있다.


 작년 지스타에서 공개된 리니지이터널의 경우,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위기의 전쟁상황 속에서 아군의 공성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벽을 타고 올라 문을 연다는 상황적 행동을 통해 벽타기 자체가 '위기를 전환시킬 수 있는 행동'으로써의 가치를 부여 받았다. 공성 단계에서 상대의 허를 찌르기 위해 몰래 벽을 타 올라간다든지, 공격 받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사다리를 성벽에 대고 오리는 행동은 모두 아군에게 ‘문을 열어 기회를 주기 위한’이라는 상황적 전제가 깔려있다. 마찬가지로, 수성 단계에서 전황을 살펴보기 위해 높이 올라가 주변상황을 살필 필요가 있다는 전제를 깔고 나면 망루에 오르기 위해 공격 받아 무너진 계단을 복구한다든가, 아예 성벽을 타고 올라가야 한다 같은 행동이 창발적인 재미로 전달된다면, 플레이어 개개인에게 창발적인 ‘스토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방법으로써 사용될 수 있다. 이는 리니지의 바츠 해방전쟁처럼, 사소하지만 큰 영웅적 행동이 스토리가 되어 회자될 수도 있을 것이다.

 

C. 정리

 

 온라인 게임에서 '스토리'의 가치에 대해서는 예전부터 개발자건 사용자건 왈가왈부가 많았다. 하지만 그러한 논쟁에 있어 스토리는 '서사적' 혹은 '읽히는 대사'로써 전달력만을 두고 회자되었지, 그 배경에 깔린 당위성에 대한 전달의 측면에서 이야기 된 부분은 적은 것 같다.

 

 위에서 다룬 것처럼, 게임에 있어 '상황을 통한 내러티브 텔링'이라든지, '샌드박스형 환경 속에서 행동을 통한 창발적 스토리의 형성' 같은 측면에서도 게임 내 스토리텔링의 가치와 그 방법들에 대한 논의가 되어, 게임의 스토리가 무작정 찍어내는 소모성 컨텐츠를 위한 설정이 아닌, 소설이나 만화처럼 주제를 갖는 '문화적 가치'를 지닐 수 있도록 확장되기를 기대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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